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주 C-123 추락사고 (문단 편집) == 군부정권의 은폐, 끝나지 않는 진상규명 투쟁 == 사고 당시 제주신문의 서재철 기자가 사고 현장을 상세히 찍었으나 5공 정권의 [[보도지침|언론 검열]]로 신문에 실리지 [[http://m.ohmynews.com/NWS_Web/Mobile/at_pg.aspx?CNTN_CD=A0000397182#cb|못했으며]] 사진 대다수도 군부에 [[http://m.jejusori.net/?mod=news&act=articleView&idxno=110562|압수되었고]] 단신으로 보도되었다. 우여곡절 끝에 그가 숨긴 사진 1장이 1989년에야 경향신문에 보도되었다. 국방부와 특전사 측도 이를 '대간첩침투 훈련 중 사망'이라고 허위로 발표했기에 [[http://m.jejusori.net/news/articleView.html?idxno=110497|이르렀다.]] 이후에도 추모비에는 '대침투작전'이라고 [[http://m.ohmynews.com/NWS_Web/Mobile/at_pg.aspx?CNTN_CD=A0000398928#cb|적혀 있다.]] 사건 이후 유족들은 '특전사 제주 2.5유족회'를 결성해 청와대와 관계기관을 상대로 진정서와 탄원서를 수없이 내고 1989년에 [[전두환]]을 비롯해 [[주영복]] 국방부장관, [[박희도]] 특전사령관 등 4명을 고소했으나[* 이외에도 82년 당시 육군의 최고책임자였던 육군참모총장 역시 고소장에 이름이 적혔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82년 당시 육군참모총장이라고만 적혀있다. 5공 당시 육군참모총장이라고 하면 [[정호용]]을 떠올리겠지만 82년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[[황영시]]였고 정호용은 3군사령관을 역임하고 있어 이 사건과는 무관하다.] 1992년에 [[서울중앙지방검찰청|서울지검]]은 무혐의 처리했다. 2007년에 2.5유족회 측은 진실화해위에 진상조사를 요청했으나 검토 과정에서 무산되었다. 2013년에 [[KBS제주방송총국]]이 <시사파일 제주>에서 해당 사건을 토대로 방송하려 했지만 제주해군기지 갈등을 의식한 총국측이 방송을 [[http://m.ohmynews.com/NWS_Web/Mobile/at_pg.aspx?CNTN_CD=A0001842116#cb|무산시켰다.]] MBC [[탐사기획 스트레이트]]에서 희생장병 유가족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여기서 여러 가지 충격적인 사실들이 밝혀졌다. 사고 나흘 뒤 유가족들은 부대원들이 화장되었다며 유골함으로 돌아온 가족들을 국립묘지에서 묻으며 합동 영결식이 진행되었는데 유가족들은 그 안에 과연 시신 조각이라도 있긴 있는거냐고 의문을 표시했다고 한다. 이후 유가족들이 실제로 사고 현장을 방문하게 된 것은 사고 백일제 다음날이었는데 군이 막는 것을 간신히 따돌리고 들어갔더니 '''그때까지도 널부러져 있던 유해 조각들을 발견'''하고 수습하기 위해 땅을 파헤쳤는데 군인들이 이마저 막으려고 했다고 한다. 물론 사망자에 대한 보상은 한 푼도 없었다. 전두환은 2021년 11월 끝내 사과 한 마디 없이 사망하였고 책임자인 특전사령관 박희도도 침묵을 지키고 있다. [[https://www.hani.co.kr/arti/society/society_general/1021124.html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